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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함께 소통하기

제자훈련, 아버지와 아들 탕자

by 청아인숙 2024.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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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아버지와 아들

관찰사항

예수님께서 예를 들어,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와 두 아들이 있는데, 한 아들이 자기의 분깃의 재산을 받아서. 타국에 가서 자기 분깃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아버지에 대한 용서를 빌고 품꾼의 하나로 받아달라고 작정하고 돌아온다. 이제나 저 재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던 아버지는 자식이 돌아온 사실만으로도 기뻐하였고, 아버지 앞에 준비한 고백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용서한다. 나중에 일을 나갔던 큰아들이 이 사실을 알고 반기지 않는다. 그러나, 큰아들의 불평에 대하여 아버지는 말하기를 너는 나와 함께 하므로 걱정할 것이 없다. 다만 내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온 동생이라고 말한다.

연구묵상

여러 각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먼저 수많은 날을 걱정과 그리움에 있던 아버지의 입장에서 탕자가 죽었다가 살아왔고 잃었다가 얻었다는 것은 되새겨 보면 육과 영적 타락에서 가족의 구성원으로 다시 돌아온 것으로 애초의 모습대로 회복되었다는 선언이라 생각한다. 둘째는 형의 태도다 나는 가끔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살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가장 행복한 곳에 있으면서 자체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있다. 바로 탕자의 큰아들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동상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있을지라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심정으로 기쁘게 맞이할 수는 없었을까? 말이다.

나의 느낌

나는 오늘 본문 말씀에 비추어 이삭의 아들 “에서”를 생각해 보았다. 부자가 되어 돌아오는 절름발이 동생을 용서하기는 그나마 쉬운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의 많은 재산을 가져갔고 몸도 성하지 못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탕자의 모습을 보고 어쩌면 나는 불평과 불만을 표출하였던 형의 모습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고 왜 깨닫지 못하였을까?. 너는 항상 나와 함께 하고 있으니 내 것이 다 너의 것이라는 말씀처럼 지금 섬기는 생활 자체가 축복이고 행복이고 은혜라는 사실을 말이다.

결단과 적용

그렇다. 나의 믿음의 눈높이는 높이고 미움의 높이는 낮추어야겠다. 아버지는 탕자가 거지꼴로 돌아오고 있음에도 달려가 끊어 안고 입 맞추었다. 믿음의 형제들은 그들을 아버지의 심정으로 같이 기뻐해 주고 울어 주어야겠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함께 기뻐하는 자들과 더불어 슬픔과 어려움이 있는 자들을 섬기는 등 나의 믿음에 지경을 넓혀 나가야겠다고 제자 훈련을 마치며 다시금 믿음의 다짐을 해본다. 누가복음 15장 11절부터 32절 말씀